자동차
[스크랩] 르망과 함께한 시간들 (1)
일산만화가
2005. 3. 16. 17:25
예상치 못한 많은 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탄력받은 김에 계속 가보겠습니다.
나름대로는 아직도 '총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나, 때론 생리학적으로
먹어가는 나이탓에 정확하지 않은 기억이 있더라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나이나 신분에 맞지않는 로얄시리즈 세대로 자동차에 입문하고 난후,
어느 정도 운전의 재미도 느끼던 시기에 '월드카 르망'이 출시되었습니다.
때는 86년 여름이었고, 고속도로 상에서 처음 본 녀석의 모습과
귀를 통해 전해 오는 달리기 재주에 반하게 되었습니다.
계속 여러가지 방도를 생각하던 끝에 드디어 87년 여름에야
처음 출고된 르망 GSi를 거의 신차와 같은 상태로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광고 문구에 나왔듯이 항공기 조종간을 방불케(?)하는 운전석과
대쉬보드의 레이아웃은 그전의 국산차와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고
Cd 0.32라고 강조한 디자인은 이전의 각진 스타일에서 한층 진보된 디자인을
띄고 있었으며, 달릴수록 가라앉는다고 주장했던 하체는 민첩하고 믿음직한
달리기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단지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면, 달리기에 비해 영 헐렁하기만 했던
브레이크의 성능이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초창기 TBi 엔진의 제어 상태가 워낙 요즘 말하는 버그가 많아서
기판을 두어번 교체하면서 탔던 기억이 납니다.
이전의 캬부레타 엔진에서 느끼지 못했던 엔진의 부조가 콘트롤 부위에서
그 자그마한 기판의 이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지요.
당시에 누비고 다녔던 길이
양수리, 북한강주변, 경춘국도 뭐 이런곳들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여를 FF차의 달리기에 빠져있을 때,
좀더 멋있는듯하고 사양이 좋은 GTE모델이 우연한 기회에 저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고, 오리지널 모델과는 조금 다르게 럭셔리(?)해 보이는
GTE를 통해 정말 많은 곳을 싸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먹다보면 질리는 법이고, 관심있는 차의 족보를 캐다보니
초창기부터 유럽으로 생산되어 팔려나가던 2.0엔진이 너무도 궁금하게 되는것은
당연한 순서이었고, 제가 차를 구매한 담당자가 저희 가족이 유달리 대우차만을 타기에
귀챦으리만큼 묻고, 대우 부평연구소에도 틈나면 조르고, 본사에도 무턱대고
수출하는 차 한대만 출고시켜달라고 조르기를 하던 차에,
드디어 꿈만 꾸던 2.0을 가져가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90년 봄, 드디어 당시 국내에서 최초로 정식 출시 2개월 전에 르망 임팩트(레이서)가
제손에 들어왔습니다. 당시는 레지던트 수련중이라 정작 차가 병원으로 도착했어도
나가보지도 못하고 일과가 끝날때까지 기다렸다가 드디어 스탭들 퇴근하고,
선배들에게 허락을 받고서야 뛰어나가서 처음 만난 녀석은
카타록도 보지 못하고 산 녀석이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저를 황홀하게 했습니다.
후드를 따라서 검은 색 'RACER" 음각이 들어간 3M 내열 스트라이프를 두른 모습에,
당시로는 큰 신발이었던, 185-60-R14의 알루미늄 휠을 신고 기다리고 있더군요.
소형차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100'마력이라는 사실이 적힌 제원표를 보고
가슴 뿌듯해하며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는 찰라, 출고하시던 분께서
기름부터 넣으라는 말을 하셨단 말을 듣고 기름을 넣으러 가다가 그만 푸르르 서버리더군요.
부평에서 출고시 1.5차량인줄 알고 그에 맞게 기름을 넣고 출고시켰는데,
녀석은 밥을 많이 먹었으니.........
우여곡절끝에 기름 탱크를 채우고 올림픽 도로를 향해 달리는데...
정말 감동 그 자체이었습니다...
지금은 우습기만 한, 당시 소형차 최초의 100마력(당시 모든 국산차들이
뻥마력이라고 보도가 나왔지만)의 폭발적인 달리기는
이전까지 제가 탔던 다른 차들과는 다른 자동차의 즐거움을 안겨다주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맛때문에 유럽에서는 아직도 'hot hatch'라고 하는 자동차 들이
달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 매뉴로 만들어지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때 만나던 여자 친구는 미친듯이 달리는 저를 보면서
'로시난테'라는 이름을 차에 붙여주었고,
교수님들은 바삐 어디 가실일이 있을 땐 저를 찾곤 하셨죠..
지금도 교수님들을 만나면 그 때 이야기를 하시며 아직도 그렇게 "뿅"하며
달리냐고 물으시곤 합니다.
그 놈은 제가 훈련 받으러 간 사이 어머님께서 아들 생각한다며 가끔 타셨는데,
'니 차만 타면 스쿠프 타는 애들이 달라붙어서는 얼굴 보고는 엄지 손가락 쳐들고 가더라'
라고 하시기도 하셨던 기억이 나는 정말 기억에 남는 차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혼자 달리는 즐거움에 빠져있던 저에게 어느 사이 공도상에서의 주행이
조금씩 지루해지던 참에 당시 국내에서 막 시작되었던 자동차 경주는
또 다른 유혹으로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고수부지에서 열린 비포장 경주를 처음 접하고는,
도로 사정상 비포장 경주이다보니, 랠리에 가까운 경기이었고,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었지만, 자동차 경주는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자동차 경주팀에 들어가게 되었고,
당시 감독으로부터 간단한 테스트를 받은 후, '선수'가 되었습니다.
수련의 신분으로 없는 시간에 자동차 경주를 위해 차를 만지고, 훈련하고,
시합나가기 위해 병원에 거짓말하고 결근했다 걸리고...
시합나갔다가는 만신창이가 되어서 견인해오고, 다시 만지고...
지금도 즐겁고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3년간의 이야기는 다음 글로 넘기겠습니다.
참고로...
당시 시합에서의 제 라이벌은, 이 명목, 김 한봉, 김 정수, 박동석, 박정룡,
뭐 이런 분들이었습니다. 물론 저야, 그들에 비해 실력도, 성적도 쳐지지만,
그래도 그들은 저의 라이벌이었습니다...^^
나름대로는 아직도 '총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나, 때론 생리학적으로
먹어가는 나이탓에 정확하지 않은 기억이 있더라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나이나 신분에 맞지않는 로얄시리즈 세대로 자동차에 입문하고 난후,
어느 정도 운전의 재미도 느끼던 시기에 '월드카 르망'이 출시되었습니다.
때는 86년 여름이었고, 고속도로 상에서 처음 본 녀석의 모습과
귀를 통해 전해 오는 달리기 재주에 반하게 되었습니다.
계속 여러가지 방도를 생각하던 끝에 드디어 87년 여름에야
처음 출고된 르망 GSi를 거의 신차와 같은 상태로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광고 문구에 나왔듯이 항공기 조종간을 방불케(?)하는 운전석과
대쉬보드의 레이아웃은 그전의 국산차와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고
Cd 0.32라고 강조한 디자인은 이전의 각진 스타일에서 한층 진보된 디자인을
띄고 있었으며, 달릴수록 가라앉는다고 주장했던 하체는 민첩하고 믿음직한
달리기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단지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면, 달리기에 비해 영 헐렁하기만 했던
브레이크의 성능이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초창기 TBi 엔진의 제어 상태가 워낙 요즘 말하는 버그가 많아서
기판을 두어번 교체하면서 탔던 기억이 납니다.
이전의 캬부레타 엔진에서 느끼지 못했던 엔진의 부조가 콘트롤 부위에서
그 자그마한 기판의 이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지요.
당시에 누비고 다녔던 길이
양수리, 북한강주변, 경춘국도 뭐 이런곳들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여를 FF차의 달리기에 빠져있을 때,
좀더 멋있는듯하고 사양이 좋은 GTE모델이 우연한 기회에 저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고, 오리지널 모델과는 조금 다르게 럭셔리(?)해 보이는
GTE를 통해 정말 많은 곳을 싸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먹다보면 질리는 법이고, 관심있는 차의 족보를 캐다보니
초창기부터 유럽으로 생산되어 팔려나가던 2.0엔진이 너무도 궁금하게 되는것은
당연한 순서이었고, 제가 차를 구매한 담당자가 저희 가족이 유달리 대우차만을 타기에
귀챦으리만큼 묻고, 대우 부평연구소에도 틈나면 조르고, 본사에도 무턱대고
수출하는 차 한대만 출고시켜달라고 조르기를 하던 차에,
드디어 꿈만 꾸던 2.0을 가져가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90년 봄, 드디어 당시 국내에서 최초로 정식 출시 2개월 전에 르망 임팩트(레이서)가
제손에 들어왔습니다. 당시는 레지던트 수련중이라 정작 차가 병원으로 도착했어도
나가보지도 못하고 일과가 끝날때까지 기다렸다가 드디어 스탭들 퇴근하고,
선배들에게 허락을 받고서야 뛰어나가서 처음 만난 녀석은
카타록도 보지 못하고 산 녀석이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저를 황홀하게 했습니다.
후드를 따라서 검은 색 'RACER" 음각이 들어간 3M 내열 스트라이프를 두른 모습에,
당시로는 큰 신발이었던, 185-60-R14의 알루미늄 휠을 신고 기다리고 있더군요.
소형차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100'마력이라는 사실이 적힌 제원표를 보고
가슴 뿌듯해하며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는 찰라, 출고하시던 분께서
기름부터 넣으라는 말을 하셨단 말을 듣고 기름을 넣으러 가다가 그만 푸르르 서버리더군요.
부평에서 출고시 1.5차량인줄 알고 그에 맞게 기름을 넣고 출고시켰는데,
녀석은 밥을 많이 먹었으니.........
우여곡절끝에 기름 탱크를 채우고 올림픽 도로를 향해 달리는데...
정말 감동 그 자체이었습니다...
지금은 우습기만 한, 당시 소형차 최초의 100마력(당시 모든 국산차들이
뻥마력이라고 보도가 나왔지만)의 폭발적인 달리기는
이전까지 제가 탔던 다른 차들과는 다른 자동차의 즐거움을 안겨다주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맛때문에 유럽에서는 아직도 'hot hatch'라고 하는 자동차 들이
달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 매뉴로 만들어지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때 만나던 여자 친구는 미친듯이 달리는 저를 보면서
'로시난테'라는 이름을 차에 붙여주었고,
교수님들은 바삐 어디 가실일이 있을 땐 저를 찾곤 하셨죠..
지금도 교수님들을 만나면 그 때 이야기를 하시며 아직도 그렇게 "뿅"하며
달리냐고 물으시곤 합니다.
그 놈은 제가 훈련 받으러 간 사이 어머님께서 아들 생각한다며 가끔 타셨는데,
'니 차만 타면 스쿠프 타는 애들이 달라붙어서는 얼굴 보고는 엄지 손가락 쳐들고 가더라'
라고 하시기도 하셨던 기억이 나는 정말 기억에 남는 차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혼자 달리는 즐거움에 빠져있던 저에게 어느 사이 공도상에서의 주행이
조금씩 지루해지던 참에 당시 국내에서 막 시작되었던 자동차 경주는
또 다른 유혹으로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고수부지에서 열린 비포장 경주를 처음 접하고는,
도로 사정상 비포장 경주이다보니, 랠리에 가까운 경기이었고,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었지만, 자동차 경주는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자동차 경주팀에 들어가게 되었고,
당시 감독으로부터 간단한 테스트를 받은 후, '선수'가 되었습니다.
수련의 신분으로 없는 시간에 자동차 경주를 위해 차를 만지고, 훈련하고,
시합나가기 위해 병원에 거짓말하고 결근했다 걸리고...
시합나갔다가는 만신창이가 되어서 견인해오고, 다시 만지고...
지금도 즐겁고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3년간의 이야기는 다음 글로 넘기겠습니다.
참고로...
당시 시합에서의 제 라이벌은, 이 명목, 김 한봉, 김 정수, 박동석, 박정룡,
뭐 이런 분들이었습니다. 물론 저야, 그들에 비해 실력도, 성적도 쳐지지만,
그래도 그들은 저의 라이벌이었습니다...^^
출처 : 카렌 (car & friends)
글쓴이 : 대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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